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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과 컨닝
이영근  (홈페이지) 조회 : 832

* 대학 때 놀았던 이야기를 재미삼아 쓰고 있습니다. 네 번째 글입니다. 다른 글도 곧 올릴 생각입니다.^^


대출과 컨닝

상록초등학교
이영근

대학에서 공부, 그건 우리에게 어우리는 말이 아이었다. 우리는 낭만만 찾아서 놀았다. 우리가 생각한 대학의 낭만은 술, 여자, 놀이였다. 공부는 없다. 선생 할 마음이 없는 나, 재수하며 놀고 싶은 만큼 놀아보지 못한 상길이, ‘학교가 조금 지겹네. 새롭게 놀 놈 없나?’ 하고서 찾던 놈팽이 선배들의 생각이 서로 잘 맞아떨어졌다.

. 대출

교육대학을 들어가니, 이건 고등학교와 달리 수업 빠지고 놀 구석이 참 많다.

먼저, 수업을 빠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안 들어가기다. 그래서 3월 한 달은 거의 수업을 들어가지 않고 시작한다. 그러니 남들 바쁘게 다니는 3월이 여유롭다. 왜 한 달인가? 그건 결석을 네 번까지는 해도 F 학점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4월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출석부를 확인한다. 교수에 따라 출석을 부르지 않고 수업을 하는 분도 계셨으니. 그런 교수님은 우리에게는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대학 4년을 다니며, 나는 결석을 많이 해서 에프 학점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건 상길이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이 하시는 말은 안 적어도, 무슨 과목이 몇 번 빠졌는지는 철저하게 지켰으니.
그렇다고 네 번을 빼고서 나머지는 수업을 다 받은 것은 아니다. 음악이나 체육은 1:1로 하는 과목이라 힘들었지만 나머지 과목은 대부분 듣지 않는 방법이 있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대답하고서 나오기다. 그러니 나나 상길이 자리는 늘 뒷문 첫 번째, 두 번째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늘 아무도 안 앉았다. 1학년 때부터 맨 뒷자리에 남학생이 있으면 대답하고 나갈 것이라 말하고서 자리를 얻었고, 여학생에게는 아주 미안한 얼굴로 양보를 받아냈다. 그렇게 반년을 사니, 2학년부터는 같은 수업이면 그 자리는 비워뒀다.

이름 부르고 나오는 것도 교수에 따라 다르다. 처음 들어간 날은 교수가 이름 부르는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무작정 대답하고서 나갔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다. 어떤 교수는 이름 하나하나 부를 때마다 얼굴을 확인한다. 이럴 때는 끝까지 기다렸다가 모두 이름을 부르고서 칠판에 배울 내용을 쓸 때 나가야 한다. 또 많은 교수들은 출석부만 보고서 부른다. 이럴 때는 이름을 부르자마자 나가면 된다. 아주 당당하게. 그리고 이름을 네다섯 부르고서 고개를 드는 교수도 있다. 이때는 내 이름을 부르고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일 때 나간다. 가장 조심스러운 것이 마지막에 이름을 부르는 교수다. 이럴 때는 늦게 들어온다.

사실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는 교수가 아닐 때 가장 많이 쓰는 게 ‘대출’이다. 대신 출석하기다. 수업을 못 가면 다른 남학생이 대신 이름에 대답을 한다. 보통 부탁을 하는데, 나와 가까운 번호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면 안 된다. 번호가 조금 멀리 떨어져있어야지 대출하는 녀석이 마음이 편하다. 목소리를 다르게 내더라도.

봉효가 나를 대출할 때다. 한문 시간으로 두 시간짜리였는데, 전날의 술로 과사무실에서 쉬며 기타 치며 놀고 있었다. 한 시간을 마치고서 얼굴이 빨개서 왔다. 봉효는 술 한 잔에, 여자 앞에서, 조금 흥분하면 얼굴이 빨개져 ‘빨갱이’라 부르던 녀석이다. 흥분하면 말도 조금 더듬는다. 그리고 별명이 하나 더 있다. 욕쟁이.
“여영근아. 씨발 좃됐다.”
“머이마?”
“니 이 씨발새끼야. 한문으로 이름이 어떻게 되네? 아, 개새끼.”
“그건 와?”
“그냥 퍼뜩 말해봐라. 새끼야.”
“길영에 뿌리근.”
“맞제? 길영에 뿌리근. 우하하하. 씨발 찍었는데 맞았다. 니 내 때메 살안 줄 알아라. 새끼야.”
이름이 강봉효다. 그러니 자주 내 이름을 대출했다. 기역에 아이니 보통 1, 2번이고 나는 남학생 중간 정도이니. 이날도 봉효가 내 이름을 대출하는데, 교수가 갑자기, “학생 이름이 한자로 어떻게 되노?” 하더란다. 옆에서 다른 애들을 큭큭거리고. 얼굴이 빨개져서는, “네. 길영에 뿌리근입니다.” 했는데,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란다. 그래서 맞는지 묻는다고 쉬는 시간 되자마자 뛰어온 거다. 그 뒤로 수업을 들어가도 나는 강봉효, 봉효는 이영근에 대답했다.

한 번은 유아교육 수업이었다. 여자 교수님이신데, 외래강사였다. 그러니 우리를 제대로 잘 모르고 착하셨다. 그날은 상길이와 나 그리고 우리 과 석희혁 이렇게 셋이서 가위바위보로 한 사람이 들어가서 둘을 대출하기로 했다. 내가 걸렸다.
들어가니 이거 남학생이 별로 없다. 선택인데 유야교육이니 남학생들 신청이 적었던 탓이다. 그러니 박상길, 석희혁, 이영근을 이어서 부른다.
“박상길.”
“네.”
“석희혁.”
“네.” 이어서 부르니 목소리를 다르게 하는 것도 이상해서 소리만 조금 작게 했다.
“이영근.”
“네.” 조금 크게 했다.
“대출하지 마세요.
“네.” 원래 목소리였다. 학생들은 웃고 난리다. 그러고서는 모른다. 그렇게 “네.”를 네 번 대답하고서는 바로 나왔으니.

. 컨닝

이렇게 공부도 않고서 어떻게 에프가 하나도 없을까? 나는 하나도 없었고, 상길이는 하나가 있었다. 에프를 받지 않고 시험을 통과한 것은 ‘컨닝’이었다.

컨닝을 하는 목적은 아주 순수(?)했다. 그냥 에프만 받지 않기 위함이었지 다른 학우들처럼 장학금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수업을 네 시간 빠졌으니 컨닝을 해도 에이나 비를 받지 못할 것이라 다른 학우들에게 피해를 많이 주지 않았다. 단지 우리 둘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컨닝에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쪽지와 손바닥, 책상이다. 시험을 보기 전날은 조금 바쁘다. 도서관을 돌며 우리 반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 노트 필기를 빌려 복사한다. 그리고서는 논다. 복사를 한 것으로 시험 준비는 끝난 것이다.
(* 참고: 시험 볼 때의 하루 모습 - 오전에 시험, 오후에는 잠, 저녁 먹고서 자료 구하고서 술 마시기, 밤 12시에 탁구로 술 깨기, 새벽 3시에 컨닝 준비, 아침 6시에 마지막 잠)

킨닝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쪽지, 손, 고무신, 책상 들이 있다. 쪽지는 많이 쓸 수 있지만, 그걸 펴서 봐야 하니 번거롭다. 손바닥은 많이 못 쓰고, 왼손만 쓸 수 있으며 땀이 나면 쓴 내용이 지워질 위험이 있다. 책상은 시험 보기 전에 가서 써야 하니 자세가 안 나온다. 무엇보다 감독하는 사람이 자리를 바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감독관에 따라, 그날 내 컨디션에 따라, 과목의 종류에 따라 컨닝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하나에 너무 매달리기보다 다양한 방법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들켜도 좋다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기억에 남는 컨닝은,
1학년 때 유아교육 시험을 보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을 펴고서 그대로 받아썼다. 그랬더니 학점으로 D를 받았다.
선택 강좌 시험이었는데, 선택을 다른 거로 한 같은 과 친구 수성이에게 부탁했다. 시험 보기 전에 수성이에게 복사한 종이를 다 줬다. 그러고서 맨 뒤 자리에 앉았다가 뒷문으로 시험지를 수성이에게 줬다. 30분 정도를 아무 종이도 없이 앉아 있었다. 시험을 다 본 친구들이 나가는데 수성이가 시험지를 안 준다. 조바심을 내며 있는데, 수성이가 문을 열며 그런다. “영근아, 못 찾겠다.” 그렇게 빈 시험지를 받고서 10분 정도문제를 보고서 지어냈는데 A를 받아 웃었던 기억이다.
한 번은 상길이와 둘 모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시험을 봤다. 쉬는 시간에 복사한 종이에 있는 호치키스를 뺐다. 그리고 그걸 바닥에 내려놓았다. 시험을 보며 발가락으로 복사한 종이를 한 장씩 넘겼다. 이때는 발가락 힘 조절이 참 중요하다. 발가락 사이에 시험지를 끼워 넘겨야 하는데 소리가 크게 날 위험이 있다. 아주 조심스럽게 넘기며 답을 찾는데, 상길이가 갑자기 화를 낸다. “에이. 씨.” 그러며 아래에 놓였던 복사한 종이를 발로 막 망가뜨린다. 종이 소리에 감독관이 쳐다보고. 상길이 뒤에 앉는 내가 시험지를 들고 흔든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 보려고. 그러며 넘겼던 기억이다. 물론 학점은 형편없었다.

컨닝이 성공한 것만큼 실패도 많다.
컨닝으로 낭패 본 적도 있다. 대학교 4학년 때 수학 부전공이다. 수학,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문과였다. 그런데 왜 부전공을 수학으로 했냐면, 교대를 들어와 2월 말에 과를 정하는데 재수할 것이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수학과를 골랐다. 1학년 때는 부전공으로 배우는 게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3년을 힘들게 했다. 부전공은 평균학점 B+에 조금 잘하는 사람은 A-, 못하는 사람은 B-를 줬다. 그런데 나는 3년을 C만 받았다. 내가 C+를 받으면 없던 A+가 한 명 생기고, C-를 받으면 둘이 생겼다. 이러니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나를 안타깝게 여긴 후배들이 늘 컨닝할 쪽지를 직접 만들어서 줬다. 그날도 그 쪽지를 들고 맨 뒷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준비했다. 김선유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교수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국선이가 팔에 깁스를 했다.
“국선아, 그럼 너는 이름만 쓰고 내라. 그리고 보고서로 대신 하자.”
“네.”
“그리고 영근아, 이리 와서 시험 쳐라.” 애들은 웃고.
“교수님, 저 여기가 좋은 데요.”
“아이다. 내 앞에서 한 번 봐라.”
이건 날 죽으라는 거다. 결국 나는 맨 앞자리에서 시험을 봤고, 왼손으로 이름만 쓴 국선이보다 먼저 시험을 마치고 나갔다.
컨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은 상길이가 F를 받은 시험이다. 일어 시험인데, 상길이는 일어를 참 잘 했다. 나? 나는 일어 꽝이였다. 그래서 짠 게 시험지를 풀고서 바꾸기로 했다. 물론 내가 푼 것은 없고. 상길이는 10분도 되지 않아 다 푼 시험지를 나에게 줬다. 나는 빈 시험지를 상길이에게 줬고. 그리고서 내 이름을 쓰고 시험지를 냈다. 그런데 나는 D를 받고, 상길이는 F를 받았다. 상길이가 교수님을 찾아가니 시험지가 없단다. 찾아보니 ‘이영근’ 시험지가 둘이다. 나는 내 이름을 쓰고, 상길이도 내 이름을 쓴 거다.

이렇게 컨닝으로 대학을 마쳤다. 그런데 하나 잘 쓰지 않은 컨닝이 있다. 그건 옆 사람 것을 보는 것은 잘 하지 않았다. 그건 쪽팔려서 안 했다. 이렇게 대학을 F 하나 받지 않고 졸업을 했다.

아, 그럼 미술이나 음악은 어떻게 통과했는지 궁금할 거다.
미술은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조금씩 고쳐서 냈다. 그리기는 이름을 오리고 내 이름을 썼고, 만들기는 버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냈다. 음악에서 피아노는 여교수님이셨는데 장미와 음료수로 넘어갔고, 성악 교수님에게서는 표를 샀던 기억이 난다. 사실은 아마도 그랬을 거다. 장미나 표가 아니라, 나를 데리고 한 번 더 본다는 것이 싫었을 거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럼 수업을 들어가지 않고 무엇을 했을까?

그러려면 하루 모습을 대충 살펴야 한다. 보통 상길이 자취방에서 일어나면, 9시쯤이다. 첫 시간 수업은 거의 빼 그때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수업은 빠져도 갖출 건 갖춰야한다. 그럼 둘이서 바쁘다. 씻고 머리 말리고, 무스 바르고.

그러고서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우정분식에 가 라면을 먹는다. 라면으로 해장이 조금 되었으면 몸이 조금씩 처진다. 그럼 몸을 살리기 위해 탁구를 친다.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시간은 늘 탁구장이 한산하다. 탁구 동호회 케비넷(여는 방법은 알 수 있는 길이 많다.)을 열어 탁구를 치며 몸을 만든다. 그러다가 한 시간 정도 수업을 듣거나 아니거나.

점심. 학교 식당이나 우정분식에서 라면을 먹는다. 보통은 우정분식이다. 라면이 질리면 학교 식당을 이용하는데 그때는 식권을 한 장 구한다. 그럼 그걸 반으로 잘라 상길이와 둘이서 먹는다. 가끔은 한 장을 반으로 접고 접은 곳에 노란 고무줄을 끼운다. 그럼 통에 식권을 넣지만 그 식권은 다시 내 손목으로 들어온다.

배가 부르니 과 사무실에서 논다. 기타도 치고, 장기도 하고, 포커도 하고. 오후에는 한두 개 수업을 듣는다. 그러면 네다섯 시다. 그럼 당구장으로.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로 술내기를 한다. 술은 투다리나 우정분식, 또는 학교 잔디밭. 그렇게 내달리면 12시가 되는 것은 금방. 그 시간에는 포커도 많이 했다.

이렇게 하루가 꽉 짜여있으니 수업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시험을 볼 때, ‘컨닝’에 대한 말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용기가 있어야 하고,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하려고 애쓰기보다 안하는 게 편하다. 그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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