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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길이(1)
이영근  (홈페이지) 조회 : 1,159

상길이(1)


이영근


무슨 이야기를 쓸까 한참 고민을 했다. ‘그래. 대학 때 무전여행 다닌 이야기로 시작하자. 아냐. 술 마시고 놀았던 이야기로 풀자. 가볍게.’ 그러며 쓰려면 걸리고, 쓰려면 또 걸리는 이름이 있다.

‘박상길’

키는 175센티 정도이고, 마른 편에, 얼굴은 각이 지고 조금 긴 편이고 나보다 못생겼다.

지난 이야기에서 말했듯 입학 통지서를 받고, 수강 신청을 하다가 함께 한 순진한 놈, 같은 과임을 알고 함께 앉아 오리엔테이션에서 같은 취미(술과 노래, 담배)로 쉽게 어울렸던 놈, 재수했으면서도 바로 들어온 내 반말에 높임말을 하던 착한 놈이 상길이다.

입학을 하기도 전에 술을 잘 마시고, 노래를 잘하는 우리는 선배들에게 완전 찍혔다. 입학하면서부터 늘 따라 다니며 술을 얻어먹었다. 과사무실에서 하던 훌라와 포커 놀이도 3월에 바로 합류했다. 포커나 훌라 이야기를 다시 할 일이 없으니 조금 더 말한다면,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우정분식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과사무실에 모인다. 모여서 보통 훌라를 하는데 대학생인데도 판이 작지는 않았다. 보통 12시까지 치고는 술을 사 들고 학교 앞 자취방을 하나 정해서 밤새 친다. 딴 사람 돈으로 야식에 소주를 마시고, 남은 돈은 다음 날 아침 해장국 값을 낸다. 잠? 잠은 낮에 잔다. 수업? 수업은 내가 아니어도 듣는 사람이 많았다.

3월 초, 그 날은 운동장에서 선배들과 축구를 하다가 과사무실에 들어갔다. 난로 불을 쬔다.

“선배, 오늘 제 생일인데 술이나 사 주이소.”

오늘은 무슨 일로 술을 마실까 했던 모두가 좋아한다. “그래? 그럼 진작 말하지마. 자, 여기 요거라도 끄라.” 그러며 난로를 가리킨다. “예?” “요거 끄라고마. 케이크 대신 이거 끄모 될 거 아이가. 퍼뜩하고 술 무로 가자. 노래는 해 줄게.” 나는 난로를 불고, 정우 선배는 난로 손잡이를 돌려 불을 끈다. 큰 손뼉으로 축하해준다. 기분 참 좋다.(사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1월 28일, 보통 3월 초라 누구에게 축하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우정분식에 들어가 책상을 가운데 쫙 모은다.

“자, 영그이 니가 가운데 앉고, 아지메, 우선 라면 좀 주고, 계란 좀 꾸주이소. 얘 생일인 게 함 무 볼라미더.”

“쟤? 이름이 뭐라 캤데?”

“영그입니다. 이영그이.”

“그래? 오늘 마이 무라. 내가 마싯게 해 줄게. 너거들은 이거 좀 날라라.”

상길이와 다른 동기들이 깍두기를 나르고 술과 잔도 돌린다. 늘 그랬다. 우정분식은 대학 4년 동안 우리 아지트였다. 점심에는 라면을 우리가 알아서 삶아 먹고 저녁에는 늘 문쪽으로 앉아 문을 열어 두고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를 보고 들어와서 같이 먹자고 꼬시려고. 우정분식에는 낡은 공책에 써 둔 외상장부가 하나 있었다. 그 장부에는 장마다 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다. 오래 전부터 이렇게 공책에 외상장부를 하는데, 그게 몇 권을 넘었을 거다. 그 장부에 영광스럽게도 우리도 이름을 올렸다. 그 장부에 아무나 이름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주에 두세 번은 먹어야 하고, 외상을 줘도 되겠다는 믿음이 있어야 했다. 믿음, 술값을 잘 내는 거겠지. 1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나와 상길이는 외상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 나는 93번, 상길이는 94번. 우정분식 아지메는 “아이고, 1학년 때 여기 이름 올리는 거는 너 둘 밖에 없을 거다.” 하셨다. 대학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보는데 그 까닭이 등록금이 아니었다. 외상값 갚기 위해서였다. 외상 달고, 방학에 갚고를 4년 동안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상길이도.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이곳 우정분식이.

“자, 우리 건배 한 번 하자. 영그이 생일을 위하여.”

“위하여!” 좋다.

“야, 자 받아라. 생일인 게 바로 들이키고 주라.” 상길이도 한 잔 준다. 선배들이 나랑 상길이 술 마시는 거 보고 좋아했던 거 가운데 하나가 들이키는 모습이었다. 잔을 받으면 그냥 들이켰다. 생맥주 같은 거는 시간 재며 술 값 내기 하며 놀았으니. 어쨌든 상길이가 준 잔을 들이키고 나도 따라 준다.

“고맙다. 니도 마이 무라.” 그러자 한 마디 씩 한다.

“사실 나도 생일인데.”

“응? 뭐라고? 니도 생일이라고 뭐라 카네.”

“어 나는 음력으로 71년 1월 28일”

“선배, 상길이도 오늘 생일이라는데예.”

그렇게 나랑 상길이는 음력으로 태어난 날도 같았다. 재수한 상길이가 나보다 한 해 빠르기는 했지만. 사실 그때는 그게 기막힌 인연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같은 날 태어났네 하는 정도였다. 술 잘 마시고, 비슷한 노래 좋아하고, 생일만 같다고 대학 4년을 같이 지내지는 않았겠지.

1학년 들어오면서부터 같이 다닌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러던 4월 하루는 자기 집에 놀러를 갔다. 상길이는 진주에서 하동 가는 길에 있는 곤양이라는 곳에 살았다. 집은 양옥이었고, 마당에는 그 당시 보기 드물었던 컴바인 같은 농기구가 많았다. 상길이 형은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늘 가면 어머님은 닭 같은 것으로 한 상 가득 챙겨주셨다.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집보다는 훨씬 잘 사는 놈이었다. 상길이 마을 뒤에 큰 저수지가 있었다. 연못 옆에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 경치가 참 좋았다. 가축은 밖에서 놀다가 밤에만 축사에 들였고, 축사 바로 옆에는 2층으로 되었는데 1층에는 짚단이, 2층은 원두막 모양으로 되어 저수지가 훤히 보였다. 그곳에서 놀다가 가축 들이는 일을 가끔 돕고는 했다. 작두로 짚단을 자르는 것도 함께.

“야, 니 우리 과에 마음에 드는 아 있더나?”

그 당시 나는 여자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사귀던 애는 연락을 않고 사라졌다.

“니는?”

“니 먼지 말해라. 새끼야.”(사실 거의 모든 말에 욕이 들어갔다. 쏵 빼고서 쓴다.)

“나? 나는 샘물. 니는?”(샘물_가명)

“나도 걔가 괜찮던데.”

“에이. 그럼 우리 우짤까? 한 판 뜰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서) 그러며 고민한 끝에 네잎클로버로 승부를 가르기로 했다.

“그럼, 네잎클로버를 다섯 개 뜯은 사람이 가지는 거다.”

“알았다. 준비됐으면 하자.”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시골(산청 생비량면)에 살 때도 네잎클로버를 참 못 찾았다. 상길이는 금세 다 뜯고서 좋아한다. 나는 하나 겨우 찾았는데. 그렇게 내가 대학 들어와서 마음에 들었던 샘물은 상길이가 사궜다. 그 당시 그런 자신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찍으면 내 것이 될 거라 여겼다. 그 뒤에도 대학 4학년 때 같은 애를 사귄 적이 있다. 그나마 그때는 사귀는 것을 몰랐다가 이어서 사궜으니 괜찮았다.

“야, 우리 서울 가서 노가다 뛰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그러며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올 때도 버스를 탄 것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차를 얻어 타고 다녔는데(히치하이킹) 아마도 스물 대는 더 탔을 것이다. 그러니까 진주에서 김천까지는 국도 3호선으로 간다. 김천에서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를 얻어 탄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서려면 200미터는 족히 뛰어가야지만 탈 수 있다.(히치하이킹으로 여행 다닌 이야기는 다음에) 그렇게 서울에 도착해서 막일을 할 수 있는 공사판을 어떻게 구했을까? 그건 얻어 탄 차에 길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태워주는 차들은 보통 화물차다. 긴 거리 운전을 하는데 피곤하고 잠도 오니 말동무가 필요한 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보통 들어주지만) 간다. 우리는 서울 공사판에서 막일을 할 것이라 했고, 적당한 곳을 추천해주셨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무악재였다. 아파트 공사를 하는 현장이었고, 무작정 들어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다행스럽게 있다고 했으며 우리는 공사장에 있는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자며 일을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시다다. 그러니까 인부(일꾼)들이 일하다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그걸 가져다 드리는 일, 특별하게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일(나르기, 삽질, 줍기 따위), 가끔은 인부들이 해 보라고 기회를 주는 일을 했다. 기회를 주는 일을 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상길이나 나나 둘 다 촌놈이니 삽질은 기본으로 되는 것이고. 그기에 상길이는 나보다 더 성실하니 우리는 어른들에게 일 잘 한다고 칭찬을 참 많이 들었다.

“야, 우리 놀러 함 가자.”

사실 촌놈들이라 온 지가 열흘이 다 되도록 나가본 곳이 없다. 나간 곳은 일터 앞에 있는 가게에서 술과 담배 사는 것 정도.

“어디 갈까?”

“그냥 종로 가 보자. 좋겄지.”

“그래. 그럼 저녁에 가자.”

일을 마치고서 우리는 서울에 들어온 처음으로 종로3가에서 내렸다. 그때 우리 패션이 죽였다. 맨발에 고무신과 슬리퍼(일터 숙소에서 화장실 갈 때 신는)에 흙 묻은 바지에 위만 냄새 안 나는 옷으로 골라 입었다. 씻기는 했지만 그 형세가 말이 아니다.

“야, 배 고프다. 뭐 좀 먹자.”

검은 비닐 봉지에 넣어준 것(기억이 안 남)을 먹는데, 그게 남은 것을 상길이가 허리끈에 묵었다. 그게 재밌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빨며. 아, 지금 생각하니 그때 둘이 다 잘하는 게 하나 더 있었다. 트림하기. 하하. 영화관이 있다. 단성사. 우리가 들어갔는데 참 크다. 그런데 사람이 별로 없다. 둘은 신발을 벗고 발을 앞에 있는 의자에 턱하니 걸치고 영화를 다 봤다. 지금 생각하니 천만 다행이다. 사람이 적었으니. 어유 냄새.

그렇게 한 달 일하고서 그 돈으로 외상값을 갚았다. 남은 돈은 다 술 마셨겠지.



(아, 내가 이 글을 왜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나눠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길이와 지냈던 다른 이야기, 조금 더 밝은 이야기_없다?_, 찾아볼게요. 그냥 읽고서 씩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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